발달장애 치료와 교육에 가족중심, 생의 주기, 초학문적 접근이 요구되는 이유

이경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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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9 08:29




발달장애 치료와 교육에 가족중심, 생의 주기, 초학문적 접근이 요구되는 이유

 

얼마전 이제 60개월을 앞둔 아동의 부모가 장애심사 서류 보완을 요청하였다. 자녀가 30개월이 넘어서 말이 유난히 늦고 상호작용이 안되어서 병원에 가서 물었더니 놀이와 언어 발달검사를 해주고 열심히 치료를 받으라 했다고 한다.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자녀는 말이 틔었고 조금씩 인지도 좋아졌지만  결국 자녀가 자폐성장애가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고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장애등록을 해서 "보호막"이라도 만들어주어야겠다고 큰 결심을 하였는데 의료보험공단에서 첫 검사 결과와 그간의 치료 기록만으로는 자폐성장애라고 보기 어려우니 검사자료를 보완해 오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 부모는 주변에 있는 여러 기관에 연락하여 장애심사 서류를 보완해줄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만난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번처럼 기한이 있는 보완 검사를 긴급으로 진행하고 검사 보고서를 제대로 써줄 수 있는 기관(혹은 전문가)를 만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내 앞에 앉아 검사를 받은 꼬마는 자폐성장애인 것이 분명했지만 나는 36개월 이전의 초기 기록지에서 자폐를 지목할만한 행동 증거들을 일일히 수집해야만 했다. 그 당시 검사 기록을 작성한 놀이치료자와 언어치료자가 각기 자폐성장애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부모와의 상호작용 어려움, 언어발달지연에 대한 의견만을 제시했기 때문에 36개월 이전에 발견되어야 한다는 첫번째 기준점에 못 미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 진단 준거에 대해 잘 모르는 '각 영역의 전문가'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흔히 나타나는 위험성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나는 자녀를 위해 애쓰는 부모의 마음이 더 안타까웠고 기왕의 보고서와 이번 검사결과 해석에서 심혈을 기울였다. 자녀의 기왕의 발달과 현재 발달, 앞으로의 발달을 부모에게 안내하고 앞으로 부모가 해야 할 일, 각 치료서비스와 교육적 접근 중 자녀에게 적합한 것, 주력하지 않아도 될 것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게 도우려고 애썼다.

 

부모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자세하고 정확한 지침을 주어서 고맙다고 기뻐했고 자녀를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이 사례를 심리치료자를 양성하는 대학원 강의에서  다루어도 되겠느냐고 질문하자 부모들은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자신들이 처음 만났던 임상심리사나 놀이치료자, 언어재활사 그리고 의사가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안내해주었더라면 이번 같은 몸고생, 맘고생을 덜 했을 거라는 취지였다.  


이렇듯 자신들의 삶을 선뜻 내어주는 용기를 가진 그 부모들이 전체 상황을 조망하는 지침을 한번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이 안타까웠고 허술한 진단과 치료체계에 대한 미안함에 만감이 교차하였다. 필자는 그동안 특수교육과 상담영역에서 장애가족을 지원하며 장애정도, 성별, 생활 연령, 생활수준과 사는 곳이 각기 다른 수많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만났는데 그들 중에는 이번 경우처럼 진단이나 치료과정을 사례로 공유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자료를 현장의 교사와 치료자들, 임상가들에게 전할 말로  제대로 만들어내기는 힘들었다자료 자체가 지나치게 방대하여 어떠한 작은 틀로  간편하게 분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이 부모들과 비슷한 경로를 밟았던 기억이 있다자녀의 발달이 늦는 것을알면서도 막연히 시간이 가면 좋아지지 않을까 바라는 우를 범했다결국 32개월에 처음 소아정신과를 찾았고, 상호작용을 늘리기 위한 치료놀이적 접근을 시작으로 긴 '특수교육의 미로'를 시작했다. 치료 시작 후에도 각 영역의 전문가마다 이것 저것 권하는 방향은 많았지만 각각 어떠한 방향인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었으며  무거운 결정들이 온전히 부모의 선택에 맡겨졌다. 더구나 무엇을 하는 어떤 치료자인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당황하거나 치료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고 불편해하는 치료자들도 있었다. 둘째 아이가 60개월에 확정진단을 받아 장애등록을 하기로 결심하고 장애등록을 하는 과정에서도 부모로서의 놀람과 불편감을 돌보고 지지해준 사람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지지해주는 주변 사람들을 쳐다볼 여유가 내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부모들이 겪은 것처럼 서류를 다시 보완해오라는 답변을 받았다면 나는 더 검사를 진행하고 장애등록을 하려고 애썼을까?  내 아이에게 알맞은 초등학교가 어디일지, 아이가 발달하려면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아이의 성장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너무도 많은 궁금증이 쌓여갔지만 각 시기마다 정확한 답을 해주는 이가 없었고, 책 안의 일반지침도 항상 도움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그 차갑고 어둡고 불편한 시기에 제대로 된 도움은 과연 어디에 존재하였던가?  

 

발달장애 치료와 교육에서 가족중심 접근, 생의 주기 고려, 초학문적 접근이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발달장애 당사자는 성인이 되면 자신의 의사결정권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게 되거나, 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후견인을 두어 자신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충분히 지원 받을 권리가 있다하지만 발달장애 성인이 충분히 그 권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시기까지 가족(부모) 발달장애인의 1차적 환경으로써, 그의 의사결정을 대리하는 후견자로써 역할을 충분히 담당하여 그 기술이 몸에 체화된 어떤 것이 되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단 초기부터 발달장애인 가족(부모)가 건강한 부모 역할, 가족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가족지원이 중요하다. 생의 주기란 당사자의 발달연령에 따라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변화가 있음을 알고 가족의 역동을 고려하여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지난 일들에 대한 후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초학문적 접근이란 한 개인을 둘러싼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영역 뿐 아니라 다른  임상가들의 영역을 어느 정도 이해하며 서로 의논하고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영역(치료서비스 영역등)을 훈련시킬 때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진단과 치료적 접근 과정을 잘 이해하게 도와야 하고, 자신의 전문 영역 이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전문가에게 의뢰 가능한지 어떻게 협력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잘 안내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3월에는 학기초라서 새로 옮겨간 학년에서 겪게  또래 사회 기술의 어려움, 동기부족, 학습 실패, 등에 대한 다양한 상담 요청이 있었다인지적 어려움이나 자폐성 장애특성으로 인한 갈등상황도 있었으나 일반학급에서 벌어진 ADHD나 학습장애, 정서행동장애학생들의 고통도 많이 다루어졌다. 그들이 분명 "발달장애보다 상태가 좋은" 학생들이지만 그 아동과 부모가 겪은 혼란과 불편감이 발달장애의 경우보다 덜하다고 단순하게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결국 가족(부모)중심으로 생의 주기를 고려하며, 초학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보면, 그 방안들은 발달장애나 다른 장애영역이나 혹은 장애가 아닌 모든 자녀들에게 동일한 원칙이 적용될지도 모른다. "자신이 할 수 있는만큼 최선을 다해 클 수 있는 기회 제공하기." 부모와 치료자, 교사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지점은 당사자 아동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격려하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경아/장애부모, 교육학박사, 청소년상담사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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