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다양성 운동과 자폐스펙트럼 장애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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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5 20:59




ADHD나 자폐스펙트럼장애와 같은 신경학적 ‘차이’는 흔히 뇌기능의 이상(dysfunctional)이나 장애(disorder 또는 disability)로 여겨지고는 한다.


뇌신경의 ‘차이’를 ‘장애’로 보는 이러한 관점은 주로 정신건강의학적 모델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근본적으로 그들이 가진 차이를 장애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능력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힘들게 만들며 그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게도 만든다. 즉, 그것을 장애로 규정함으로써 그 차이로 인해 가질 수 밖에 없는 약점을 강조하게 되고 취약성에 집중하게 만드는 반면 뇌신경의 차이로 인해 가질 수 있는 강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활용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뇌신경의 차이를 장애로만 바라본다면 그들이 가진 차이를 존중하며 그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게 되고 사회에서 그들이 설 자리는 더욱 찾기 어렵게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흔히 ‘다양성’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인종이나 성적 지향 같은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 그 다양성을 뇌신경의 다양성까지 생각하지는 못한다. 90년대 초반 자폐인 당사자와 그 가족 그리고 그들을 옹호하는 영미권의 권익옹호단체들이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용어는 뇌신경의 차이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정하라는 캠페인의 구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경다양성은 ADHD나 자폐스펙트럼장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간에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신경학적인 차이를 인식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충분히 확대해석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우리 사회도 이 새로운 사회 운동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물리적, 심리적으로 매우 복잡한 사회가 되었고 그 때문인지 최근 20여 년간 태어난 아이들은 이전에 비해 신경학적인 편차가 매우 크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더욱 강해질 것으로 추측된다.   


생물학적 연구들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종의 신경다양성은 진화과정에서 확보되어야 하는 유전인자의 다양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예측불가능한 수많은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유전인자는 더 많은 다양성을 확보해두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 변이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자면 자폐스펙트럼 장애와 ADHD와 같은 증상들은 오류(error)나 이상(abnormality)이 아니라 인간 게놈의 변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진화를 하는 한 계속 나타나게 될 현상이며 궁극적으로 이런 방향이 인간 종(種)이 만들어가는 사회 전체에 유익을 가져오며 자연의 순리이기도 하다.


ADHD와 연관된 유전인자로 알려진 DRD4 gene은 새로운 것, 낯선 것을 찾는데 특화된 기능을 가진 유전인자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약 만 년 전부터 인간종에게 나타나기 시작한 유전인자로 알려져 있다. 자폐증과 관련된 유전인자도 만 년 전부터 존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폐와 연결된 유전적 변이는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선택된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최근의 연구도 있다. 이 유전인자는 자폐인들의 예외적인 특출한 기억 능력의 발현에 기여하고 있고, 시각, 후각, 미각에 있어 강화된 지각능력을 가지도록 하는 것으로 보이며, 특히, 디테일을 보는데 매우 뛰어난 눈을 갖도록 만든다고 한다. 이러한 감각신경의 특징들은 동물들의 감각에 비견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다.


이런 특징이 여전히 유전자의 발현 형질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것이 여전히 어떤 잇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진화생물학과 발생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해석이다.


이렇게 전형적인 신경을 가진 사람들과 차이가 많이 나는 뇌신경을 가진 자녀들의 부모를 위해 조언하고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부모들에게 자주 이야기한다. 아이를 전형적인 신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환경에 맞춰 바꿀 것인지, 그 환경을 아이들에게 맞게 바꿀 것인지 선택해야 하며, 만약 아이의 입장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물론 흑백논리를 적용할 문제는 아니며 정도의 문제로 해석해야 할 문제이다. 전형적인 신경을 가진 사람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을 비전형적인 신경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 살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그것과 자녀가 가진 어려움을 변화시키는 것은 함께 가지고 가야할 가치라는 의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삶의 방식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하위문화들'이 존재한다. 발달장애인들에게는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차이를 삶의 조건으로 그대로 지닌 상황에서의 '성공(적인 삶)'이 가능한 문화가 필요하다. 이것은 그들의 신경다양성에 가장 적합한 생태계를 발견하고 만들어 내고 제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강점은 살리고 그들의 약점과 난점은 최소화할 수 있는 그런 가정, 그런 지역사회, 그런 문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ADHD가 있는 아이들은 환경속의 다양한 요소들이 빠르게 변화는 상황에서 더 잘 수행할 수 있고 때로는 그것이 창의성과 신선한 생각들을 낳기도 한다는 것을 그들과 함께 해 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나는 자폐증이나 ADHD가 아무 어려움을 주지 않는 쉬운 문제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그 가족들이 실제 현실에서 겪는 수많은 어려움을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그들의 어려움, 단점, 취약성만을 계속 이야기 하며 그것에만 집중해왔기 때문에 이제 나는 그 반대급부로 그들의 뇌신경의 비전형성이 가지는 가치와 아름다움도 보아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요컨대, 그들의 차이를 다른 사람들의 '정상'이라는 관념에 맞춰 변화시키거나 제거하기보다는 신경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차이에 관용적인 세상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가 교정하거나 감소시켜야 하는 것은 그 ‘장애’나 ‘차이’가 아니라 그들의 부적절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이나 그들과 가족들이 겪게 되는 고통에 국한 된 것일 뿐이다.


다양성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인간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모든 사회와 문화는 근본적으로 다양성 그 자체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다면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될 수 없으며 이제 우리 사회는 뇌신경의 다양성도 인정하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 김성남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대표, 소통과지원연구소 대표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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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Devon MacEachron, Human Neurodiversity Should Be Celebrated for Its Strengths, Not Treated as a Disorder (NowThis Video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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