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여가


자조 모임에 스며든 코로나 블루




글 : 백미옥(성인발달장애인 자조모임 조력자, 장애인권강사)




2020년도 어느새 12월을 마감하는 기간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좀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은 안일함에 빠져들기가 무섭게 며칠 새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의 숫자가 연속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발길 닿는 곳곳마다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은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자조 모임의 회원들의 인내심도 이제는 한계에 올랐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생긴 신조어 '코로나 블루'.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 불안감 등을 뜻하는 이 말이 우리 자조 모임의 몇 회원들에게 덮쳐왔다. 조력인인 내 탓이 아님을 알면서도 죄책감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사회 활동과 외출이 줄어들면서 생긴 고립감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무거워진 가족과 사회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자조 모임의 회원들에게는 너무도 치명적이다. 요즘 코로나 블루 상황에 있는 몇 회원들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2주 격주로 만나는 토요팀은 2팀이 있다.

첫 번째 팀은 개성점수가 만점씩인 회원들이 가득 모여 있는 팀이다. 선택과 결정에 대한 표현에서도 다양한 지원이 가장 많은 이 팀의 회원들은 일 년 내내 못 만나다가 지난 11월에 첫 모임을 가졌다. 지난 한 해 동안 익혀 왔던 그 익숙한 모습들이 다행히도 그리 낯설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 센터의 담당직원과 함께 의기투합하고 의욕을 불살랐는데 코로나 단계 격상으로 그만 그날이 2020년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임으로 종결이 되어버렸다. 비록 한 달에 2번밖에 안 되는 만남이지만 작년 한 해 동안의 모임을 통해 손톱만큼씩이지만 미세한 변화를 가족들과 공유하면서 2020년에는 그 감동 지속하리라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코로나의 지속적인 방해에 가장 큰 희생의 자조 모임이 되고 말았다.


토요일의 다른 자조 모임.

회원 중 한 명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4시간마저 재택근무로 전환되자 “치료제 백신 승인해 주세요.”를 조력인과 회원들이 함께 있는 단체톡방에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 회원은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남기고, 바로 흔적을 지우고, 통화를 요청해 왔다. 초기에는 조력인인 나에게만 집중하더니 이젠 자조 모임의 모든 회원에게 불편을 주는 상황이 되었다.


매번 모임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묻는 것도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상황인데 모임의 맏형이 계속 이렇게 불안을 표현하니 회원들 모두가 걱정이 무거운 짐이 되었다.

“선생님, **이형 탈퇴시켜 버려요. 일하는데 계속 보이스톡해요.”

더 큰 일에도 너그러웠던 회원들이었는데 서로 막말이 오고 가기까지 했다. 평소에도 불안감이 남다른 회원이었는데 안타깝기가 끝이 없다. 코로나를 종식시키지 못한 것이 내 탓인 것 같고, 코로나 백신을 빨리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 나의 무능력인 듯하고,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원을 안정시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 잠시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버리는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강한 정신력 하나만이 방패이자 무기인 나도 이 정도인데 울 회원들은 어떨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울 따름이다.


3월부터 매주 화요일에 만나던 청소년 자조 모임은 다행히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비워져 있던 조력인인 나의 틈새 일정에 맞춰 지자체에서 2020년에 지원받은 만큼만 회기를 완료하고 12월부터 방학에 들어갔다. 이 모임의 한 회원은 다른 팀의 모임에 불쑥 등장해서 우리 모임은 언제 하느냐며 2021년 3월에 다시 할 거라는 확답을 받고 퇴장하곤 했다.


매주 금요일에 만나는 자조모임 팀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우리만의 공간이라고 확신했던 공간의 건물주님이 위험한 시기라고 장소 대여를 더 이상 하락하지 않겠노라 연락을 해 오셨다. 발빠르게 움직인 보호자들은 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다행히도 장소를 지원해 주는 지역사회복지관 덕분에 계속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 블루가 몇명의 회원들의 발목을 잡아 버렸다.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회원들.

방역방침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장소를 선뜻 내어준 복지관 담당자가 모임 중에도 수시로 등장해서 마스크를 쓰는지 감시하고 지적하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회원들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며 진행하느라 애 써보지만 마스크가 모두를 우울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와중에 평소 모방이라는 것은 자신과 상관없는 것처럼 지내던 한 회원이,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다른 회원이 화장실 변기에 마스크를 버리고 물을 내리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고는 그 행동을 따라 하며 자신의 답답함을 덩달아 해소하고자 하는 누구도 상상치 못한 모방행동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게 된 것이다.


만일 이 시기가 아니었다면 행동이 발전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칭찬받고 차근차근 올바른 행동으로 대체 할 수 있는 새로운 대체 행동을 교육 받아야 할 일이거늘, 하필 시기가 안 좋아 조력인 외의 타인에게로부터 무섭게 혼나고 집으로 바로 귀가하게 된 슬픈 상황이 되어 버리게 된 것이다.


어디를 갈까,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고민에 대한 선택과 결정을 바로 실행하고 그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불가능하다보니 이 코로나 시기가 참으로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일주일에 단 한 번뿐인 이 날, 이 시간을 더 간절하게 기다리고 가볍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숨통이 트인다는 어머님들의 말에 코끝이 찡해진다. 매 주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회원들과 가족들과 조력인 모두에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소중한 일인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부디 이 소중한 자조모임을 먹구름처럼 뒤덮고 있는 코로나 블루가 하루빨리 걷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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