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의 날적이
전공과 졸업 이후, 민준이는
김언정(23살 자폐청년 민준엄마. 부모교육 강사)
작년 12월, 아이가 전공과를 졸업했다. 합격할 수 있을까 마음 졸였던 전공과 입학의 기쁨은 잠시였고, 2년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아이의 졸업을 앞두고 작년 한해 고민이 많았다. 4시간 취업, 보호작업장, 주간활동서비스, 복지관의 성인프로그램, 직업훈련기관 등의 여러 가지 선택지를 두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지곤 했다.
학교에서 A 보호작업장의 실습 프로그램을 안내하길래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하고 신청했다. 주 4일 3시간씩 6주 동안 A 보호작업장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 곳 선생님과 상담도 하고 했고 이후에 취업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결국 선택하지는 않았다. 취업을 하게 되면 실습 때와 달리 하루 8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데 긴 시간에 비해 할 일이 많지 않은 게 보였다. 욕심이나 의욕이 별로 없고 느긋한 성향인 울 아들의 경우, 느슨한 일과를 보내다 보면 성장은커녕 퇴보하게 될 것이 빤해 보였다.
졸업을 한두달 남긴 시점에서 혹시나 하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교육청의 장애인복지일자리에 지원을 했다. 그러나 떨어졌고, 새로 오픈하는 대기업의 표준사업장에도 지원을 했지만 역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학교로부터 취업 관련 정보들을 문자로 서비스 받고 있는데 많은 구인공고들을 보면서 장애인 일자리가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경도와 경계성장애인 아이들에게 아주 취중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직무를 더 단순하고 다양하게 만들고, 근로지원인의 지원기간도 늘리고, 직업훈련도 더 세심하게 시키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그보다 기능이 떨어지는 중도의 아이들도 취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늘어날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많이 아쉬웠다.
결국 민준이는 문화여가와 자립생활준비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인근 복지관의 성인프로그램에 지원했고, 현재 4개월째 다니고 있다. 음악, 미술, 체육, 요리, 동아리활동, 지역시설이용, 자치회의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이 프로그램은 전공과 시간표와 다른 듯 비슷한데 아이는 아주 즐거워하며 다니고 있다.
4년의 시간이 보장되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고민은 계속 진행중이다. 프로그램은 마음에 들지만 이용료에 식비까지 한달에 30만원이 넘는 비용이 무엇보다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공짜로 학교 다닐 때가 좋기는 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과 병행할 수 있는 4시간 취업 일자리는 없을까 등 여러 가지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 오가곤 한다.
그 가운데 민준이에 관한 선택을 할 때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난 시절, 치료실을 선택할 때 나의 기준은 가격이 싼 곳이 아니라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곳이었다.(물론 우리집 경제상황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다) 그러나 전공과까지 졸업한 아이의 갈 곳을 정하는 지금은 남편의 퇴직이 다가오고 있고 노후대책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전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당분간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아이에게 더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의 그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민준이는 최근 말이 많이 늘었고, 자율적인 행동들도 많이 생겨났다.
유치원부터 전공과까지 교육청과 함께 한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자녀양육의 시즌 1이라면, 졸업 이후는 자녀양육의 시즌 2가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즌 1의 시작은 절망이었고, 그 과정에서 굽이굽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연속되었지만 아이가 사춘기를 지낸 고등학교 이후부터는 감사하게도 꽤 안정적이고 평안한 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며 나와 남편, 비장애 형제인 둘째 아이와의 관계가 예상치 않게 돈독해졌다. 그런 가운데 가족밴드의 공연이야기까지 더해지니 우리 가족의 스토리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났고, 언제부턴가 책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다. 우리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용기를 내고 작년 한 해 열심히 원고를 썼다. 그 책이 드디어 6월 말경 발간될 예정이다.
시즌 1의 결말은 그래도 해피엔딩이라고 나름 생각했고, 시즌 2도 그 기세를 몰아 행복하게 이어질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시즌 2에도 시작은 여전히 고달프고 막막하고 힘들었다. 지난 6개월은 내가 책 속에 담았던 수많은 소망의 메시지가 이름모를 누군가뿐만 아니라 바로 나자신에게도 꼭 필요함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다.
사회에 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아이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더 가르쳐야 할지 여전히 머리 속이 복잡할 때가 많다. 그러나 지금은 차근차근 하나씩 해답을 찾아가며 다시 시간을 쌓아가야 할 때임을 기억한다. 무엇보다도 민준이를 중심에 두고 아이에 관한 모든 선택과 결정을 하리라 다시금 마음 먹어본다.
민준이네 가족의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언제나처럼 소망을 품으며 한걸음씩 내딛어본다.